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픈 그림자와 피해자 보상의 당위성
안녕하세요.
우리 현대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그리고 반드시 바르게 기억하고 바로잡아야 할 아픈 역사 한 토막을 함께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바로 1980년대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삼청교육대’ 사건입니다.
"삼청교육대"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당시 정부는 사회 악을 뿌리 뽑고 사람들을 선도한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그 실상은 무고한 시민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던 명백한 국가 폭력이었습니다.
삼청교육대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 그 안에서 어떠한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지금도 피해자분들의 정당한 보상과 명예회복을 목소리 높여 요구해야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삼청교육대란 무엇인가요? (설립 배경과 개요)
삼청교육대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강경 진압하며 권력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이하 국보위)가 추진한 대표적인 강제 수용 공작입니다.
1980년 8월 4일, 국보위는 사회 정화 대책의 일환으로 ‘사회악 부랑아 정화 공작(삼청계획 5호)’을 발표합니다.
이 계획의 표면적인 명분은 "깡패, 불량배, 사회 혼란 세력을 소탕하여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이들을 새사람으로 개과천선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에 붙은 '삼청(三淸)'은 국보위가 설치되었던 삼청동에서 따왔다는 설과, 사회를 깨끗이 청소하겠다는 의미에서 붙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이 가진 뜻이 무엇이었든 간에, 이 사업은 법적 근거도 없이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짓밟은 불법적인 강제 수용에 불과했습니다.

2. '사회 정화'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무차별적 검거
당시 신군부는 각 경찰서마다 검거 할당량을 내렸습니다.
경찰관들은 실적을 채우기 위해 눈에 띄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에서 문신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잡혀간 사람, 술자리에서 정부나 대통령을 비판하는 말을 했다가 신고당한 사람, 단순히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았거나, 집시법 위반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심지어 이웃이나 동네 사람과 시비가 붙었다가 억울하게 고발당한 보통의 가장과 청년들이처럼 당초 명목이었던 '흉악범이나 깡패'뿐만 아니라, 수많은 무고한 일반 시민들이 아무런 법적 절차(영장 발부, 재판 등)도 거치지 않은 채 군부대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삼청계획에 의해 검거된 인원은 무려 6만여 명에 달했으며, 이 중 약 4만 명이 군부대에 설치된 삼청교육대에 강제 수용되어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3. 지옥 같았던 삼청교육대의 인권 침해 실태
삼청교육대에 입소한 이들에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교육'이나 '선도'가 아닌,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파괴하는 폭력과 학대였습니다.
① 극심한 가혹행위와 유격 훈련입소 직후부터 교관과 조교들은 피수용자들에게 언어폭력과 무자비한 매질을 가했습니다. '순치 희생'이라는 이름 아래 타이어 끌기, 맨땅에서 머리 박기, 극심한 유격 훈련이 매일같이 이어졌습니다. 조교들의 폭행으로 뼈가 부러지거나 장기가 파열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② 인간다운 삶의 박탈식사는 턱없이 부족하여 늘 기아 상태에 시달려야 했고, 위생 상태는 차마 눈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병에 걸려도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했으며,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은 완전히 박탈당했습니다.
③ 사망 및 후유증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의 조사에 따르면, 삼청교육대 교육 도중 매질과 가혹행위, 총기 사고 등으로 현장에서 사망한 사람만 공식적으로 50여 명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는 현장 사망자일 뿐입니다.
퇴소 후 가혹행위 후유증으로 사망하거나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 분들, 그리고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삶을 마감한 분들까지 합치면 피해 규모는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더욱이 삼청교육을 마친 후에도 상당수의 인원은 '근로봉사'라는 명목으로 전방 부대나 건설 현장에 다시 강제 노역으로 투입되었고, 일부는 청송보호감호소로 송치되어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4. 낙인 찍힌 삶
퇴소 후에도 끝나지 않은 비극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의 비극은 수용소 문을 걸어 나올 때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회로 돌아온 그들에게는 '삼청교육대 출신'이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붙었습니다.
정부와 언론이 이들을 '사회악 깡패'로 몰아세웠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자신이 삼청교육대에 다녀왔다는 사실조차 가족이나 이웃에게 숨겨야만 했습니다.
취업길은 막혔고, 이웃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평생을 죄인처럼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신체적 장애와 신경질환, 트라우마는 온전히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몫이었습니다.
국가의 잘못된 공권력 행사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한 가정이 완전히 붕괴된 것입니다.

5. 국가 폭력 피해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그동안 우리 사회는 삼청교육대 사건을 바로잡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 왔습니다.
2004년 ‘삼청교육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조사를 통해 국가의 사과와 피해 구제 권고가 이어졌습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역시 삼청교육대의 근거가 되었던 계엄포고령에 대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위헌·무효"라고 확정판결을 내렸습니다.
국가가 법적 근거 없이 국민의 자유를 침해한 '명백한 국가 폭력'이었음을 사법부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보상은 피해자들이 입은 치명적인 고통과 세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며, 법적 맹점으로 인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사각지대의 피해자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왜 정당한 보상과 명예회복이 강조되어야 할까요?
국가의 책임 완수국가가 법을 위반하여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면, 그 피해를 전적으로 배상하고 책임지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피해자와 유가족의 한(恨) 해소육체적·정신적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피해자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정당한 보상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국가가 그들의 억울함을 인정하고 명예를 되찾아주는 상징적인 조치입니다.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국가 폭력에 대한 엄중한 반성과 철저한 보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다시는 어떠한 통치 권력도 국민의 인권을 함부로 짓밟을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이 완성됩니다.

6. 포스팅을 마치며
잊지 않는 것이 기억의 시작입니다삼청교육대 사건은 과거에 흘러간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억울하게 끌려가 청춘을 빼앗기고, 평생 후유증과 낙인 속에서 고통받아 온 우리의 아버지고 삼촌이자 이웃들의 이야기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피해자분들이 살아계실 때 완벽한 명예회복과 정당한 보상이 조속히 완료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바로 보는 것, 그리고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우리 사회의 정의와 인권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분들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삼청교육대 보상금 신청 ☎ 010 8833 8909